중국 1급 배우, 마이리는 받고 성룡은 못 받는 이유
2024년 12월, 중국 SNS 微博 한쪽이 잠시 시끄러웠다. 배우 마이리(马伊琍)가 '一级演员' 자격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한국에서라면 '베테랑 배우가 인정받았다' 정도로 흘려들었을 뉴스인데, 중국에서는 이 한 줄이 묘하게 무겁다. 이유는 단순하다. 一级演员은 본인이 스스로 '나는 일급 배우'라고 부르는 호칭이 아니다. 정부가 직접 매겨주는 직급이다.
중국 배우에게는 4단계 직급이 있다
중국에는 배우, 가수, 무용수, 연출가 같은 예술 분야 종사자에게도 공무원이나 교수처럼 국가가 부여하는 4단계 직급이 있다. 정식 명칭은 国家职称评定이다.
의사에게 主任医师, 副主任医师, 主治医师, 住院医师가 있고, 엔지니어에게 高级工程师, 工程师, 助理工程师가 있는 것과 똑같은 구조다. 중국에서 일하다 보면 명함이든 병원 의사 명패든 회의 자료 발표자 소개든, 이 직급이 이름 옆에 함께 적혀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본다. 이름은 사람을 부르는 도구지만, 직급은 그 사람을 사회 안 어디에 놓을지 표시하는 좌표다.
그런데 이건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이 시스템은 1950~60년대 사회주의식 국가 운영 모델에서 출발했다. 예술도 직업이고, 직업이면 등급이 있어야 한다는 발상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배우는 작품 흥행과 출연료로만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다. 文化和旅游部 산하 평가위원회 심사를 거쳐 '나는 국가가 인정한 N급 배우'라는 증서를 정식으로 받는다.
평가받으려면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마이리는 上海话剧艺术中心 소속이다. 1996년 상하이희극학원(上海戏剧学院) 졸업 후 줄곧 이 극단에 소속되어 30년 가까이 연극·드라마·영화를 오갔다. 시스템이 측정할 수 있는 자리에 정확히 서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평가를 받을 수 있었고, 받았다.
왕바오창은 왜 일급 배우가 될 수 없는가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이 시작된다.
왕바오창(王宝强)은 누가 봐도 중국 최정상급 배우다. 《盲井》, 《人在囧途》, 《唐人街探案》, 《八角笼中》까지. 그가 이끌어 낸 흥행과 연기 평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는 一级演员 자격을 받을 수 없다.
이유는 그가 体制外 배우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소림사에서 무술을 익혔고, 정규 연기 학교를 거치지 않았으며, 국가 예술기관에 소속된 적이 한 번도 없다. 평가 신청 서류부터 막힌다.
이건 그가 못 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스템이 그를 측정하는 자(尺)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왕바오창은 시장이 만든 배우다. 작품이 시장에서 검증되고, 관객 발걸음으로 평가받았다. 마이리는 시스템이 인정한 배우다. 둘 다 정상이지만, 가는 길이 다르고 그 길에 매달린 자(尺)도 다르다.
그렇다면 인터넷에 떠도는 '성룡 일급 배우설'은
가짜다.
성룡(成龙)은 홍콩 사람이다. 주윤발(周润发)도 마찬가지다. 一级演员 평가는 중국 본토(中国大陆) 체제 내 예술기관 소속 인원을 대상으로 한다. 홍콩 배우는 애초에 평가 풀에 들어가지 않는다.
성룡이 中国电影家协会 부주석, 全国政协委员 같은 자리를 맡고 있는 건 사실이다. 다만 이건 직급(职称)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직함이다. 두 가지를 섞어서 '성룡 일급 배우'라고 퍼뜨리는 글들은 출처가 없거나, 다른 직함을 잘못 옮긴 경우다.
一级演员이 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기본적으로 국가 正高级职称을 받은 셈이니, 정년·임금·복지가 정교수급 대우다. 소속 기관에서 안정적인 활동 기반과 연금이 보장된다. 한국에 비유하면 국립극단 정단원이 정교수급 평가를 정부로부터 받는 그림에 가깝다.
여기에 더해, 일부 一级演员은 정협 위원이나 인민대표대회 대표 같은 추가 정치 직함을 받으면서 더 높은 수준의 의전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다만 이건 사람마다 다르고, 一级演员 자체가 자동으로 보장하는 부분은 아니다.
요약하면 一级演员은 '국가가 공인한 정교수급 예술가'라는 신분증이다. 한국에는 이에 정확히 대응하는 제도가 없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가장 비슷한 결을 가지지만, 등급 체계 자체가 다르다.
한국 독자에게 이게 말해 주는 것
이 시스템을 처음 들으면 한국인 입장에서는 좀 낯설다. "배우에게 정부가 직접 등급을 매긴다고?" 그러나 중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이게 의외로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학자, 의사, 엔지니어 모두 비슷한 등급 체계 위에 서 있고, 사회 전반이 '직급 + 대우'의 좌표 위에서 정렬되어 있다.
이 구조가 좋은지 다른지는 가치판단의 영역이고, 여기서 다룰 부분은 아니다. 다만 마이리는 들어가고 왕바오창은 들어가지 못하는 시스템의 경계선을 들여다 보면, 중국이 '국가가 인정한 예술'과 '시장이 인정한 예술'을 명확히 구분해서 호명하고 있다는 점은 또렷이 드러난다.
마이리는 시스템의 자에 맞는 사람이다. 왕바오창은 시장의 자에 맞는 사람이다. 둘 다 중국 영화의 최정상이지만, 그들이 받는 호칭의 무게는 같지 않다. 다음에 중국 뉴스에서 어느 배우 이름 뒤에 国家一级演员, 全国政协委员, 中影协副主席 같은 직함이 줄줄이 붙은 모습을 보거든, 그 한 줄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는 점만 기억해도 좋겠다. 중국 사회가 그 사람을 어떤 자리에 놓고 있는지가 그 짧은 줄 안에 다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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