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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찬물을 안 마시는 이유, 그리고 헤이티 신화의 모순

marvin-jung 2026. 5. 1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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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찬물을 안 마시는 이유, 그리고 헤이티 신화의 모순

중국인이 찬물을 안 마시는 이유, 그리고 헤이티 신화의 모순

매운 훠궈에 상온 콜라를 마시는 나라가, 동시에 세계 최대의 차가운 음료 시장이 되었습니다. 2000년 묵은 따뜻한 물 문화와 신차(新茶饮) 붐 사이에서 진짜 중국이 보입니다.

훠궈집이었습니다. 매콤한 홍탕(红汤)이 보글보글 끓고, 옆 테이블에 젊은 여성 두 분이 앉아서 1.5리터 콜라 한 병을 막 받아 든 참이었습니다. 한 분이 페트병을 만져보더니 종업원을 다시 불렀습니다.

常温的,谢谢 상온인 걸로 주세요

차가운 게 왔으니 상온으로 바꿔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살다 온 입장에서는 그 자리에서 뇌가 잠시 정지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매운 거 먹는데 콜라가 상온이라고요? 이게 중국 생활 초반에 받은 첫 번째 문화 충격이었고, 이후로 똑같은 장면을 정말 수없이 다시 봤습니다.

식당에서는 매번 묻습니다, 빙더? 창원더?

중국 식당에서 음료나 맥주를 주문하면 종업원은 거의 100%, 의례적으로 묻습니다.

冰的还是常温的? 차가운 거 드릴까요, 상온으로 드릴까요?

처음에는 형식적인 질문인 줄 알았습니다. 한국에서야 맥주는 무조건 시원하게 나오는 게 디폴트니까요. 그런데 중국에서는 진짜 두 옵션이 다 존재합니다. 냉장고에 들어가 있는 것과, 들어가 있지 않은 것. 손님의 절반은 상온을 고릅니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만한 광경인데, 사실 그날 훠궈집보다 더 어이없었던 일이 따로 있었습니다.

노래방의 상온 맥주 한 짝, 그리고 또 한 짝

중국 친구들과 노래방(KTV)에 간 적이 있습니다. 한국 노래방은 보통 한두 시간이면 끝나는데, 중국 KTV는 다릅니다. 기본이 다섯 시간입니다. 마이크 잡고 노래 부르고 술 마시고, 다시 노래 부르고. 다 같이 맥주 한 짝을 시켰지요. 문제는 그 맥주가 상온이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한 모금 마시고 표정이 무너졌습니다. 차게 식힌 맥주의 톡 쏘는 그 시원함이 사라지니, 그냥 미적지근한 보리 음료를 들이켜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은 멀쩡히 잘 마셨습니다. 잘 마실 뿐 아니라 한 짝을 다 비우고는 한 짝을 더 시켰습니다. 두 번째 짝이 도착했을 때, 저는 진지하게 도망을 고민했습니다.

"多喝热水", 중국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만능 처방

중국에서 한 일 년쯤 살면 누구나 듣게 되는 만능 처방이 있습니다.

多喝热水 따뜻한 물 많이 마셔요

감기에 걸렸다고 하면 "多喝热水", 배가 아프다고 하면 "多喝热水", 생리통이 심하다고 하면 "多喝热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면 "多喝热水". 어찌나 만능 처방인지, 중국 SNS에서는 이 말이 "남자가 여자친구한테 무관심할 때 던지는 대사"의 대명사가 되어 있습니다. 인터넷 짤방으로 돌아다닐 정도입니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만큼 "뜨거운 물"이 만병통치약처럼 박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깊이 들어갑니다. 2000년이 넘는 시간이 한 잔의 미지근한 콜라 안에 응축되어 있는 셈이지요.


왜 그런가, 다섯 겹의 이유

중국 친구들에게 얼음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여 주면 십중팔구 이렇게 말합니다.

这样喝对胃不好 그렇게 마시면 위장에 안 좋아요

가벼운 잔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걱정하는 표정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입맛 차이인 줄 알았는데, 살면서 보니 이건 입맛이 아니라 깊이 박힌 건강관(健康观)이었습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다섯 겹의 이유가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一. 2000년 묵은 중의학의 寒과 热

중의학(中医)에서는 모든 음식과 음료를 네 가지 성질로 분류합니다. (한), (량), (온), (열). 차가운 것은 으로 분류되고, 이 비위(脾胃)에 들어가면 양기(阳气)를 갉아먹는다고 봅니다. 비위가 상하면 소화가 안 되고, 기()가 막힌다는 사고지요.

여기에 또 하나의 핵심 개념이 있습니다. 上火(샹훠). 직역하면 "불이 오른다"입니다. 매운 거 먹거나 튀긴 거 먹어서 입에 염증이 나거나 변비가 생기면 중국 친구들은 "上火了"(샹훠러)라고 말합니다. 그 반대인 기도 비슷한 무게로 다뤄집니다. 즉, 음식의 온도와 성질을 가지고 몸의 균형을 맞추는 사고가 일상 깊숙이 박혀 있는 거지요.

여성의 경우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체질이 차다는 体寒(체한). 자궁이 차가워지면 생리통이 심해지고 임신에도 영향이 간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 여성들은 한여름에도 따뜻한 물을 마시고, 생리 기간에는 더더욱 차가운 것을 피합니다. 처음 봤을 때는 좀 신기했는데, 한국 어머니들이 "산후조리할 때 찬 거 먹지 말라"고 하시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사고방식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국에는 산후조리에만 남아 있는 사고가, 중국에서는 일상 전반에 살아 있는 셈입니다.

기록을 따라가 보면 기원전 4세기에 이미 차가운 음료와 뜨거운 음료가 "기능성 음료"로 분류되어 있었다는 자료가 나옵니다. 이 뿌리는 단순히 오래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문명만큼 오래되었습니다.

二. 차(茶) 문화가 만들어 놓은 보일러

여기에 결정적인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차 문화입니다. 사실 저는 이 부분을 처음에는 별로 연결지어 생각 못 했는데, 살수록 이게 진짜 큰 그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차를 우리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끓는 물입니다. 차 잎에서 향과 맛을 뽑아내려면 80도에서 95도 사이의 물이 필요합니다. 즉, 차를 마시는 문화가 있는 곳은 자연스럽게 끓인 물을 마시는 문화가 같이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차 문화가 없는 나라에서는 굳이 물을 끓일 일상적 이유가 없는데, 중국은 정반대였습니다.

당나라() 8세기에 육우(陆羽)가 《茶经》(다경)을 쓰고 나서, 차 문화는 황실에서 평민까지 전 사회로 퍼졌습니다. 명나라, 청나라를 거치면서 차는 거의 생존 필수품 수준이 되었고요. 19세기 상하이 풍경을 묘사한 자료에는 老虎灶(라오후자오)라고 불리는 가게가 동네마다 있었다고 나옵니다. "호랑이 가마"라는 뜻인데, 동네 사람들에게 끓인 물을 파는 가게였습니다. 마실 물뿐 아니라 씻을 물도 끓여서 사다 썼지요.

생활 한 컷 지금도 중국 사무실 책상마다, 회의실 테이블마다, 비행기 좌석 옆에 保温杯(바오원베이, 보온병)가 놓여 있습니다. 안에는 보통 따뜻한 차나 끓인 물이 들어 있고, 枸杞(구기자), 菊花(국화꽃), 大枣(대추), 陈皮(귤껍질) 같은 게 동동 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차 문화의 현대판이지요.

차 문화는 단순히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사회 인프라를 만들었습니다. 끓이는 도구, 보관하는 도구, 마시는 도구, 사고파는 시장까지. 이 인프라가 깔려 있는 상태에서 끓인 물을 마시는 습관이 자리 잡은 거지요. 한국이나 일본은 차 문화가 있긴 했지만 중국만큼 일상적이고 광범위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수질이 달랐습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따로 이야기하겠습니다.

三. 1862년 상하이 콜레라가 만든 신앙

여기서부터는 좀 더 근대사입니다. 1850년 태평천국의 난(太平天国)이 터지면서, 동부 중국이 전쟁터가 됩니다. 1862년에는 약 150만 명의 피난민이 상하이로 몰렸고, 그해 5월 상하이에 콜레라가 터졌습니다. 최고조에는 하루 3000명이 사망할 정도였지요. 이 콜레라는 우편선을 따라 북경까지 올라갔는데, 흥미로운 점은 남방 지역이 거의 피해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해석은 단순했습니다. "남방 사람들이 평소에 뜨거운 물을 마셔서 그렇다." 후대 연구에서 콜레라 확산 경로는 다른 원인이었다는 게 밝혀지지만, 19세기 당시에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끓인 물 마시기는 "건강에 좋은 습관" 정도에서 "안 마시면 죽는다"는 생존 신앙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전염병이 무서운 건 그게 만든 트라우마가 세대를 넘어간다는 점입니다. 19세기 콜레라가 만든 공포가, 20세기 위생 캠페인의 비옥한 토양이 되었습니다.

四. 1934년 신생활운동, 정부가 처음 못을 박다

1934년에 당시 정부가 新生活运动(신생활운동)이라는 대규모 사회 개혁 운동을 시작합니다. 의생활, 식생활, 주거, 교통 등 일상생활 전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부가 만들어서 발표한 운동이었지요. 그 식생활 항목에 "끓인 물 마시기"가 정식으로 들어갔습니다. 근거는 명확했습니다. 끓이면 박테리아가 죽고, 이질 같은 수인성 질병을 막을 수 있다.

이 캠페인이 끓인 물 마시기를 처음으로 국가 정책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례입니다. 전쟁 통이라 실제 보급은 제한적이었지만, 정부가 공식 문서로 "끓여 마시는 게 좋다"고 선언한 첫 순간이었습니다.

五. 1952년 위생 캠페인, 결정타

1952년에는 爱国卫生运动(애국위생운동)이라는 대규모 공중위생 운동이 전국 단위로 진행됩니다. 이 캠페인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가 "끓인 물을 마시자"였습니다. 학교 벽에는 이런 슬로건이 붙었지요.

儿童应该养成一天喝三次开水的习惯 어린이는 하루에 세 번 끓인 물을 마시는 습관을 들이자

이게 결정적이었습니다. 학교 교실에서 어린아이가 매일 같은 슬로건을 받아 적으면, 그 세대가 어른이 되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정책이 아니라 본능이 됩니다. 1950년대~80년대 사이 농촌 영아 사망률이 1000명당 약 200명에서 50명 이하로 떨어졌는데, 이 결과 자체가 캠페인의 정당성을 사회 전체에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이 시기에 보온병이 모든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도 그 시절을 살아온 노년층은 보온병 없이는 외출을 잘 안 합니다.

자, 여기까지가 "왜 중국인이 찬물을 안 마시는가"의 다섯 겹입니다. 2000년 묵은 중의학, 1500년 가까운 차 문화, 19세기 콜레라 트라우마, 1934년과 1952년의 정부 캠페인. 이 다섯 겹이 한 잔의 미지근한 콜라 안에 응축되어 있는 거지요. 만약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결론은 "역시 중국은 따뜻한 물의 나라"가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21세기에 정말 흥미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반전, 헤이티(喜茶)와 신차(新茶饮) 붐

중국에서 이 5~10년 사이에 가장 폭발적으로 큰 산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저는 망설임 없이 新茶饮(신차인, 신차)을 꼽습니다. 한국에서는 "헤이티"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喜茶(시차), 한국에 진출한 奈雪的茶(나이쉐의차), 글로벌 매장 4만 6천 개를 돌파한 蜜雪冰城(미쉐빙청), 그리고 최근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霸王茶姬(바왕차지)와 古茗(구밍), 茶百道(차바이도). 이 브랜드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음료가 차갑게 나옵니다.

2023년 중국 신차 시장 규모 ··· 2,473억 위안
2018~2023년 연평균 성장률 ··· 25.2%
중국 신차 음용자 수(2023) ··· 3.2억 명
미쉐빙청 글로벌 매장 수(2024년 말) ··· 46,479개
미쉐빙청 2024년 매출 ··· 248.3억 위안

숫자로만 봐도 압도적입니다. 한국에서 스타벅스가 한 해 매출 3조 원 정도인데, 중국 신차 시장은 그것의 15배 가까운 규모로 굴러갑니다. 거리에 나가 보면 진짜로 실감할 수 있습니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 어디든 지하철역 근처 100미터 안에 음료 브랜드 매장이 서너 개씩 줄지어 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줄이 매장 밖까지 늘어서고, SNS에는 "今天的快乐水"(오늘의 행복 물)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음료 사진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컷

이 글을 쓰면서 자료를 찾다가 한 가지 디테일에 웃었습니다. 중국 1위 음료 브랜드 미쉐빙청의 시작이 어디였는지 아십니까. 1997년 정저우(郑州)에서 장홍차오(张红超)라는 사람이 차린 작은 가게였는데, 그 가게의 원래 이름이 "寒流刨冰"이었습니다. 직역하면 "한류 빙수". 그러니까 글자 그대로 (찬 한)자가 들어간 차가운 빙수 가게가, 27년 뒤에 글로벌 매장 4만 6천 개의 거대 음료 제국이 된 겁니다.

중의학이 그토록 경계하던 (한)이, 21세기 중국 음료 시장의 출발점에 떡하니 박혀 있다는 사실. 이게 그저 우연이 아니라,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솔직한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주문 언어

매장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 중국 젊은이들이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처음 들으면 외국어 같은데, 듣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正常冰,三分糖 얼음 보통, 당도 30%로 주세요

얼음의 양과 당도를 손님이 직접 고르는 시스템입니다. 얼음은 보통 多冰(많이), 正常冰(보통), 少冰(적게), 去冰(빼고), 不加冰(안 넣고) 다섯 단계 정도가 있고, 당도는 全糖(100%), 七分糖(70%), 半糖(50%), 三分糖(30%), 无糖(0%)으로 세분화됩니다. 처음에는 이 시스템이 복잡해서 외국인은 헤매기 마련인데, 중국 친구들은 마치 비밀번호 외우듯이 자기만의 조합을 알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젊은 층 사이에서 多冰(얼음 많이)을 시키는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 세대라면 펄쩍 뛸 일이지요. 카페에서도 비슷합니다. 冰美式(빙메이스, 아이스 아메리카노)과 冷萃咖啡(렁추이커피, 콜드 브루)가 베스트셀러가 된 지 오래입니다.

왜 갑자기 차가운 게 좋아졌을까

이게 단순히 "서구 문화의 영향"이라고만 보면 그림이 너무 단순합니다. 좀 더 입체적으로 보면 몇 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습니다.

첫째, 에어컨과 냉장고의 보편화입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 가정에 냉장고가 흔하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음료를 일상적으로 마시는 환경 자체가 마련되지 않았던 거지요. 2000년대 이후 도시 가정의 100%에 가까운 냉장고 보급률이 달성되면서, 차가운 음료가 자연스러운 선택지로 들어왔습니다.

둘째, SNS와 인스타그램화입니다. 중국의 샤오훙수(小红书), 더우인(抖音)에서 음료는 사진이 잘 나와야 합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음료보다, 얼음이 가득 찬 컵에 알록달록한 토핑이 떠 있는 차가운 음료가 압도적으로 사진발이 좋습니다. 신차 브랜드들은 처음부터 "찍히기 위한 음료"로 설계되었습니다.

셋째, 젊은 세대의 정체성 표현입니다. 부모 세대가 보온병을 들고 다니며 따뜻한 물을 마시는 동안, 자녀 세대가 차가운 헤이티를 한 손에 들고 다닙니다. 이건 단순한 음료 선택이 아니라 세대적 자기표현에 가깝습니다. "我和爸妈不一样"(나는 부모님과 달라요)이라는 무언의 선언이지요.

넷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차 문화의 현대적 재해석입니다. 헤이티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슬로건이 무엇이었는지 보면 흥미롭습니다. "为茶饮带来灵感"(차에 영감을 불어넣다). 즉, 신차는 차 문화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차 문화를 차갑고 화려한 형태로 재발명한 겁니다. 결국 중국 신차 시장의 본질은 "차"입니다. 다만 그 차가 100도가 아니라 영하 상태로 나오는 것뿐이지요.

이중생활, 모순이 공존하는 진짜 중국

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풍경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사무실 동료가 책상에 보온병(保温杯)을 두고, 그 안에 따뜻한 차에 구기자와 대추를 띄워 마시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霸王茶姬를 배달로 시킵니다. 얼음이 잔뜩 든 차가운 음료가 도착하고, 그걸 한 시간 만에 다 마신 다음 다시 책상의 보온병으로 돌아갑니다.

한 사람이, 한 책상에서, 양극단을 동시에 살고 있습니다.

이건 모순이 아니라 진짜 중국입니다. 2000년의 전통과 21세기의 트렌드가 같은 사람 안에 공존합니다. 감기 걸리면 여전히 "多喝热水"를 외치지만, 그렇다고 매일 헤이티를 끊지는 않습니다. 부모님 앞에서는 따뜻한 차를 마시지만, 친구들과 만나면 多冰을 시킵니다. 회의실에서는 보온병이고, 카페에서는 콜드 브루입니다. 둘 다 자기 자신이지요.

생각해 볼 거리 중국이 어떻게 동시에 1) 보온병의 나라이면서 2) 세계 최대 차가운 음료 시장이 될 수 있는가. 이걸 양자택일로 보면 이해가 안 되지만, 공존으로 보면 자연스럽습니다. 14억 인구의 나라가 한 가지 색깔로 통일되어 있을 수가 없지요. 외국 언론이 자주 빠지는 함정이 바로 여기입니다. 중국을 하나의 모습으로 그리려고 하면 실제 모습을 놓칩니다.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은 왜 다른가

여기서 한 가지가 자연스럽게 궁금해집니다. 한국과 일본은 왜 찬물 문화가 발달했을까요? 같은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인데 말이지요.

답은 의외로 지질학에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화산암 지질 덕분에 연수(软水)에 가깝고, 수돗물이 그대로 마실 수 있을 만큼 부드럽습니다. 반면 중국은 화북 지역이 경수(硬水), 화남 지역도 부분적으로 그렇고, 유럽 대부분도 경수입니다. 경수는 석회 성분(碳酸钙, 탄산칼슘)이 많이 녹아 있어서 그대로 마시면 위장에 부담이 가고 맛도 영 별로입니다. 호텔 전기 주전자 안쪽에 하얗게 끼어 있는 그 자국이 다 석회입니다.

한국 식당에서는 한겨울에도 손님에게 얼음물을 내놓습니다. 외국에 안 가본 친구들에게 "유럽이나 중국 식당은 미지근한 물을 줘"라고 이야기하면 다들 표정이 굳습니다. 그 정도로 한국과 일본은 전 세계적으로 봐도 찬물 문화가 강한, 좀 특이한 나라들에 속합니다.

정리하면 한국과 일본은 "굳이 끓일 이유가 적은 환경"이었고, 중국은 "끓이지 않으면 곤란한 환경"이었습니다. 거기에 차 문화와 중의학이 얹히면서, 두 나라는 같은 동아시아 안에서도 정반대 방향으로 갈렸습니다. 하지만 그 정반대였던 중국이, 지금 차가운 음료 시장에서는 세계 최대가 되어 있다는 게 또 한 번의 반전입니다.

서로 걱정해 줍니다

중국 친구들이 제 얼음물을 보면서 "위장에 나빠요"라고 걱정해 주는 동안, 저는 친구들이 기름이 둥둥 떠 있는 국을 들이켜는 모습을 보면서 똑같이 이야기합니다.

那个对胃真不好 그거 진짜 위에 안 좋아요

그러면 친구들은 웃습니다.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요. 그 모습을 보면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각자 자기 문화에서 익숙한 것을 안전한 것이라 믿고, 낯선 것은 위험한 것이라 본다는 사실 말이지요. 위장에 좋고 나쁘고는 사실 의학의 문제가 아니라 익숙함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문화 차이라는 것이 이렇게 작은 데서 드러납니다. 식당에서 콜라 한 병이 어떤 온도로 나오는지, 그 한순간에 어느 나라에서 자랐는지가 그대로 보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마저도 바뀝니다. 같은 중국 안에서 보온병 세대와 헤이티 세대가 같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저는 이제 중국 친구들 앞에서는 얼음물을 좀 자제하려고 합니다. 굳이 다른 사람 걱정시킬 필요는 없으니까요. 대신 친구들이 안 보는 자리에서는 여전히 얼음물입니다. 한국 사람의 위장은 아무래도 차가운 게 더 편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끔, 중국 동료가 점심시간에 시킨 헤이티 한 잔을 같이 마실 때면, 작은 통쾌함이 듭니다. "看吧,你们也喝冰的嘛"(거 봐요, 여러분도 차가운 거 마시잖아요). 그러면 동료는 어색하게 웃으며 보온병으로 다시 손을 뻗습니다. 그 손길에 2000년이 들어 있고, 그가 손에 든 헤이티에 21세기가 들어 있는 거지요.

다음 글 예고
중국인의 보온병(保温杯) 이야기. 이번 글에서 살짝 다뤘지만, 진짜 깊이 들어가면 보온병 하나만으로 한 편이 따로 나옵니다. 노년층의 보온병과 30대의 보온병이 어떻게 다른지, "保温杯 + 枸杞"라는 인터넷 밈이 왜 중년의 상징이 되었는지, 그리고 왜 헤이티를 마시던 청년들도 결국 30대가 되면 보온병으로 돌아오는지. 한 손에 들고 다니는 그릇 안에 중국인의 건강관, 세대, 그리고 약간의 신분까지 다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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