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짬뽕, 탕수육… 분명히 중국 음식이라고 배웠는데, 막상 중국에 오니 그 음식들이 온데간데없다. 대신 처음 맡아보는 낯선 향이 코를 파고든다."
우리가 알던 중국 음식은 사실 없다
중국은 흔히 '요리 대국'이라 불린다. 수천 년의 식문화 역사를 가진 나라답게,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차이나타운과 중국 식당이 있다. 뉴욕에도, 런던에도, 도쿄에도, 서울에도. 그만큼 중국 음식이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뜻 아닐까?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중국 음식"은 사실 각 나라의 입맛에 맞게 철저히 현지화된 버전이다. 한국에서 먹던 자장면, 짬뽕, 탕수육은 중국 화교들이 한국인의 식성에 맞게 수십 년에 걸쳐 변형한 음식이다. 이것은 '중국 음식'이 아니라 '한국식 중국 음식'이었던 것이다.
막상 중국 땅을 밟으면 이 사실을 아주 빠르게, 아주 강렬하게 체감하게 된다. 중국 식당의 메뉴판을 열면 익숙한 음식 이름이 거의 없고, 음식이 나왔을 때 코끝을 파고드는 향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오향(五香)이란 무엇인가 — 먼저 알고 가자
중국 음식에서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장벽은 단연 오향(五香)이다. 직역하면 '다섯 가지 향'이라는 뜻으로, 중국 요리의 핵심 혼합 향신료다. 어떤 다섯 가지냐고?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가장 일반적인 구성은 이렇다.
중국 전통 의학에서 '오미(五味)의 균형'을 중시한 데서 유래한 혼합 향신료. 단맛·쓴맛·신맛·짠맛·매운맛을 모두 담는다는 철학이 깃들어 있다. 분말 형태(五香粉, 우샹펀)로 유통되며 고기 잡내 제거와 깊은 풍미 부여에 쓰인다.
이 다섯 가지가 혼합된 오향분(五香粉)은 중국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고, 돼지고기·오리고기 요리, 두부조림, 삶은 달걀은 물론 마트 과자 봉지에까지 버젓이 들어간다. "과자인데 왜 한약 냄새가 나지?"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오향 외에도 자객은 더 있다
오향만 각오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국 식탁에는 또 다른 복병들이 기다리고 있다.
- 고수(香菜, 샹차이) — 전 세계 호불호 최강 향신료. 국물 요리, 만두, 냉채 위에 기본으로 올라간다. 먹기 전에 반드시 "부야오 샹차이(不要香菜)"를 외워두자. 이 한 마디가 중국 생활의 생명줄이다.
- 두반장(豆瓣醬) — 발효 콩과 고추로 만든 쓰촨식 장. 마파두부와 마라탕의 핵심 재료. 오향과 달리 익숙해지면 오히려 없으면 허전해진다.
- 마라(麻辣) — 화자오의 저릿한 마비감(麻)과 고추의 매운맛(辣)의 합작. 처음에는 공포, 한 달 후에는 없으면 밥이 안 넘어간다는 한국인이 속출한다.
한국인은 두 부류뿐이다, 중간은 없다
중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한국인들 사이에 아주 명확한 두 개의 진영이 형성된다. 놀랍게도 중간 지대라는 게 거의 없다. 어느 순간 스스로 깨닫게 된다 — 나는 둘 중 어느 편인가.
오향을 일주일 만에 받아들임. 마라탕을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음. "오향 과자가 은근 중독된다"고 말함. 현지 단골 식당이 생김. 귀국 후 마라탕 금단 현상 경험. 한국에서 오향분 직구 시도.
팔각 냄새만 맡아도 식욕 0. 한국 마트와 한식당을 생명줄처럼 여김. 귀국 날짜를 손꼽아 기다림. 입국장에서 자장면 먹는 게 버킷리스트. 한국 음식 사진 보며 버팀.
흥미로운 건 이 선호가 나이나 성별과 큰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호기심 왕성한 20대도 끝내 적응 못하고, 연세 있는 분이 마라탕에 반해 매주 드시는 경우도 있다. 결국 혀의 문제, 더 정확히는 뇌에 새겨진 맛의 기억의 문제다.
그래도 중국은 요리 대국이 맞다
오해는 말자. 한국인 입맛에 안 맞는다고 해서 중국 요리의 깊이와 다양성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중국은 광둥(광동), 쓰촨(사천), 상하이, 베이징, 후난 등 지역마다 전혀 다른 요리 문화를 갖고 있다. 오향이 약하고 담백한 광동식 딤섬, 겉바속촉의 베이징 오리구이, 섬세한 국물의 상하이 샤오롱바오는 한국인에게도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쉽다.
적응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일주일이고,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 고수 거부권 행사:
不要香菜 (부야오 샹차이)— "고수 빼주세요"를 반드시 외울 것 - 오향 먼저 탐색: 편의점 오향 땅콩으로 내 내성을 미리 테스트해볼 것
- 마라 단계 조절: 마라탕 첫 도전은 가장 낮은 매운맛 단계(微辣)부터
- 광동 음식으로 입문: 향신료가 약한 광동식 요리가 적응하기 수월하다
- 억지로 먹지 말 것: 안 맞는 음식은 안 맞는 것. 당신은 정상이다. ㅋㅋ
중국에 처음 오는 분들께. '중국 음식 = 자장면'이라는 공식을 먼저 지우세요. 그리고 자신이 도전파인지 항복파인지 너무 일찍 판단하지 마세요. 혀는 생각보다 천천히,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적응합니다. 단, 고수만큼은 평생 안 맞아도 이상한 게 아닙니다. 전 세계 수억 명도 같은 심정이거든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