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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은 왜 이렇게 부족할까: 웨이퍼·수율·수요가 만드는 공급의 벽

marvin-jung 2026. 5. 1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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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은 왜 이렇게 부족할까: 웨이퍼·수율·수요가 만드는 공급의 벽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 세 회사가 마주한 동일한 제약
HBM이 부족하다는 기사가 하루에도 몇 건씩 쏟아집니다. SK하이닉스의 2025년 HBM 물량은 이미 다 팔렸고, 2026년 물량도 사실상 마감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묘한 부분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HBM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단 세 곳. 왜 이 부족이 이렇게 오래 풀리지 않을까요. 공정·수율·수요 구조를 하나씩 뜯어 보면, 이 부족이 단순한 '캐파 부족' 문제가 아니라는 게 보입니다.
HBM을 만드는 곳은 세 곳뿐

먼저 사실관계부터 정리하겠습니다. AI 학습 가속기에 들어가는 HBM(High Bandwidth Memory)을 양산할 수 있는 회사는 전 세계에서 단 세 곳입니다.

NO.1
SK하이닉스
NO.2
삼성전자
NO.3
마이크론

중국의 CXMT(长鑫存储)도 HBM 진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양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글로벌 AI 인프라 전체가 이 세 회사의 생산 페이스에 묶여 있다는 뜻입니다. 점유율 수치는 2025년 기준 시장 추정치이고, 정확한 비율은 분기마다 출렁입니다.

'많이 만들면 더 번다'는 직관의 함정

여기서 우리가 흔히 빠지는 직관이 하나 있습니다. "HBM이 일반 D램보다 5~7배 비싸니까, 같은 공장 자원을 HBM 쪽으로 몰면 5~7배 더 벌지 않을까?" 이 계산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웨이퍼 한 장에서 나오는 결과물의 차이

HBM은 일반 DDR5와 같은 D램 다이(die)를 사용합니다. 다만 그 다이를 8단, 12단, 16단으로 쌓고, 그 아래에 base die를 깐 다음, TSV(Through-Silicon Via)라는 미세한 구멍으로 전기 신호를 통과시킵니다.

이 적층 공정 때문에 같은 웨이퍼 한 장을 HBM에 투입하면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항목 DDR5 HBM3E
다이 사용 1다이 = 1칩 8~16다이 + base die = 1스택
출하 가능 GB 100% 기준 같은 웨이퍼 대비 약 40~50%
수율 안정적 적층·TSV로 더 낮음
GB당 ASP 1배 약 5~7배
웨이퍼당 매출(추정) 1배 약 2~3배

GB당 가격은 분명히 HBM이 압도적입니다. 하지만 동일한 웨이퍼 자원으로 출하 가능한 총 GB가 적고 수율도 낮다 보니, 결국 웨이퍼 한 장 단위로 환산한 매출은 5~7배가 아니라 2~3배 수준으로 좁혀집니다. 이익률까지 따지면 격차는 더 줄어듭니다.

그 사이 DDR5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두 번째 포인트가 여기서 들어옵니다. AI 서버에는 HBM만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CPU 옆에 일반 DDR5도 잔뜩 꽂힙니다. AI 학습 서버 한 대에 DDR5가 1~2TB씩 들어가는 게 요즘 표준이고, 추론 서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3사가 HBM 생산에 캐파를 돌리면 어떻게 될까요. 자동으로 DDR5 캐파가 줄어듭니다. DDR5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릅니다. 2024년 하반기부터 2025년까지 DDR5 가격이 꾸준히 오른 배경에 이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캐파를 빠르게 늘리기 어려운 경제적 이유

여기까지 보면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그래도 HBM이 비싸니까 회사 입장에서는 더 빨리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직관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숫자를 따라가 보면 그림이 좀 다릅니다.

가정해 보겠습니다. 3사가 HBM 양산에 캐파를 급격히 더 투입한다고요. 두 가지 결과가 동시에 따라옵니다.

첫째, HBM 자체의 시장 가격이 빠르게 떨어집니다. 지금 HBM이 GB당 5~7배의 프리미엄을 받는 이유는 공급이 빠듯하기 때문입니다. 캐파가 급증하면 이 프리미엄이 무너집니다. 가장 마진 좋은 제품의 ASP가 가장 먼저 흔들리는 구조입니다.

둘째, DDR5는 더 부족해지고 가격은 더 오릅니다. 같은 웨이퍼에서 HBM과 DDR5는 자원을 두고 경쟁하니까요. 하지만 이 추가 매출이 HBM 프리미엄 붕괴를 메우기에는 부족합니다. HBM 한 스택의 매출이 DDR5 한 모듈의 몇 배인지를 생각하면 단순한 산수입니다.

여기에 더해 HBM은 수요 변동 리스크가 큰 제품입니다. AI 학습용 가속기 수요에 강하게 묶여 있어서, 캐파를 미리 크게 늘려 뒀다가 GPU 사이클이 한 번이라도 식으면 회복이 어렵습니다. 반면 DDR5는 서버·PC·모바일이 모두 받쳐 주는 폭넓은 수요 기반을 갖고 있어 상대적으로 안정적입니다.

이 세 가지 요인이 합쳐지면 그림이 분명해집니다. HBM의 가격 하방 압력, 한정된 웨이퍼 자원, 수요 변동 리스크. 각 회사 입장에서 "가능한 한 빨리 캐파를 폭증시키는 것"이 반드시 최선의 선택이 되지 않습니다. 캐파 증설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시장에는 만성적 공급 부족이 나타납니다.

실적이 보여 주는 것

이 구조가 실제 실적에서도 확인됩니다. 2024년 4분기부터 2025년 내내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은 모두 메모리 부문에서 사상 최고 수준의 실적을 냈습니다. HBM 매출 비중이 빠르게 늘어난 영향이 크고, 여기에 일반 D램 가격 상승이 함께 받쳐 줬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바꿔 말하면, 지금의 메모리 호황은 HBM 단독의 성과가 아니라 HBM과 DDR5가 같은 웨이퍼 위에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구조가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어느 한쪽만 떼어 놓고 보면 시장의 진짜 그림을 놓치게 됩니다.

이 구도는 언제까지 갈까

지금의 시장 균형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두 가지 변수가 이 균형을 흔들 수 있습니다.

1) AI 수요의 방향 전환

AI 학습 수요가 한 차례 식거나, 추론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 HBM 수요 구조 자체가 흔들립니다. 각 회사가 캐파 증설에 신중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한번 깐 캐파는 쉽게 거둘 수 없으니까요.

2) 네 번째 플레이어의 등장

진짜 변수는 CXMT입니다. 중국 본토에서 D램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이 회사가 HBM 양산에 성공하는 시점, 그것이 시장 구조의 분기점이 됩니다. 3사 체제에서 4사 체제로 전환되면 공급 측 균형이 흔들립니다. 한 곳만 빠져나가도 균형이 바뀌는 게 소수 공급자 시장의 본질이거든요.

결론: 만성적 부족의 구조적 원인

"HBM이 부족하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다만 이 부족은 단순히 "공장을 안 짓는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적층 공정의 난이도, 한정된 웨이퍼 자원, HBM과 DDR5의 캐파 경쟁 관계, 그리고 수요 변동 리스크가 겹쳐 만들어진 구조적 부족입니다. 캐파를 두 배로 늘리는 데 시간이 걸리고, 늘린다고 해서 매출이 두 배가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산업 관찰자 입장에서 중요한 건 이 구조가 언제 변하는지를 지켜보는 일입니다. CXMT의 양산 일정, 미중 갈등의 향방, AI 학습 수요의 지속성. 이 세 가지가 향후 메모리 사이클의 모양을 결정하게 될 겁니다.

다음 글 예고
CXMT는 진짜 위협일까: 중국 메모리 굴기의 현실과 한계

베이징과 합비(合肥)에서 본 중국 메모리 산업의 진짜 모습. CXMT가 D램에서 한국을 따라잡는 데 얼마나 걸릴지, HBM은 정말 가능할지를 현장에서 듣고 본 정보와 함께 풀어 보겠습니다. 미국 제재의 빈틈, 그리고 중국 빅테크들이 자국 메모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함께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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